01 평강이 있을지어다 (pp.11-36)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셔서 모든 두려움을 한방에 날려버리시고 평강을 주신 내용을 다루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두려움의 근원 즉 원초적인 두려움의 원인은 죄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으로는 만족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아담 스스로 취한 것이 죄였다.
내 인생에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채워질까?
인생의 주인되신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허무뿐이다. 그분만이 인생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분만이 인생의 답이시다.
사람들이 왜 두려워할까? 그 이유는 두려움(죄)에는 형벌이 따르기 때문이다.
가인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 앞을 떠나 성을 쌓고 살았다.(창4:16-17) 얼마나 두려웠으면…
죄의 결과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두려움과 실패감으로 무너진 제자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이,
지금도 내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02 죄의 세력을 다스리라(pp.37-56)
그리스도인이 되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갈등이 죄와의 싸움이다.
이 죄는 특히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잘 처리 하지 못하여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이후는 겉사람보다는 속사람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사람의 진정한 매력은 겉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질 때 드러난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겉사람은 늙어갈지 몰라도, 속사람은 오히려 더 새로워지는 안티에이징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를 믿었다고 저절로 안티에이징이 되는 게 아니다. 마치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내면세계를 매일 청소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지저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죄에 대한 영적 관리인 것이다.
예쁘고 귀여운 어린 애완사자를 키우는 사람이 결국에는 그 사자가 장성하여 주인을 잡아먹었다는 실화가 있는 것처럼, 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별거아니었고 오히려 재밌고 즐겁기까지 했지만 결국 죄가 자라면서 죄로 인해 죽는다.
이제 더 이상 죄가 내 속에 자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든 죄를 다스려야 한다.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죄를 이길 수 있다. 죄를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은 성령께서주신다.
죄는 사람 속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인생을 망하게 한다. 죄는 가만히 두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란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죄가 주는 달콤한 유혹을 절대 끊지 못한다. 기도와 말씀 외에는 방법이 없다.
죄 문제는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엄청난 능력이 죄 안에 있다. 그래서 죄와는 피흘리기까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죄를 이기지 못하면 죄의 세력에 포로가 되고 만다. 가인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였을 때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는 죄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때문이다. 이세상에서 자신의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보혈의 능력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죄사함을 얻게하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롬 8:1-2)
전에는 죄의 세력에 매여 살던 사람이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물리치는 능력의 새사람이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요1:12) 성령님은 우리 안에 죄를 물리치고 다스리게 하시는 능력이시다
03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라(pp.57-76)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말씀을 등한시 하거나 성령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려 하고 성령님을 의존하지 않는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성령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이기고 다스리도록 성령님과 동행하도록 하셨다.
승리를 선포하라. 죄에 매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도록 강력한 영적 훈련을 받는 것이 죄와 세상을 이기는 비법이다.
성령님은 영적인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말씀의 깊이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복음은 전할 때 믿음으로 영접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설득력 있는 어떤 말이나 나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 즉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성령께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다.
양육과 훈련의 목표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께서 하신 사역, 즉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며 영적으로 성장하여 비전을 이루는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던 사람이 양육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변화되어 새 인생 새 목표를 붙들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영적 성장이다.
04 역사의 주역이 되라(pp.81-107)
2030세계비전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지금 나를 역사의 무대로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즉시 순종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부담인가 영광인가?
내가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감격이고 행복이 될 것이다.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가장 큰 기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 위해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부어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로 영성과 실력이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멋진 사람이 역사의 주역이다. 역사의 주역은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산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하나님께서 세계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교회에게 주신 위대한 전도소그룹이 행복모임이다. 행복모임은 3명 이상이 팀을 이루어 베스트들과 좋은 관계맺기를 통해 행복모임으로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는 전도방법이다. 행복모임은 가정이나 학교나 사업장이나 소그룹을 할 수 있는 카페 등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베스트를 초대해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탁월한 전도방법이다.
행복모임 리더는 복음으로 영혼을 살리는 사명자이고, 양육과 훈련으로 세워진 신실한 일꾼이며, 복음의 절대능력으로 행복모임을 누룩처럼 확장해나가는 전도제자다. 주님은 반드시 행복모임 리더를 통해 세계비전을 이루신다. 주님은 가난한 갈릴리의 어부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와 영적권위를 더하셔서 역사의 주역이 되게 하신다. 지금도 주님은 부르심에 순종하면 만들어 쓰신다.
05 믿음을 선포하라(pp.108-125)
의심 많은 도마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실 때 도마는 믿음의 고백을 드린다. “주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그 고백을 받으시며 이렇게 응답하신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역사의 주역은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의 행동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기적을 믿음으로 창출해내는 이들이 바로 역사의 주역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성으로나 사람의 머리로 이해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로만 분별할 수 있다.(고전 2:13) 이해가 되어야 믿을 수 있고, 유익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계이다. 이런 신앙을 이해타산적 신앙이라고 한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고 자기에게 유익이 있다고 판단되면 예수님을 믿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다음 단계는 이해가 안 되어도 믿고, 유익이 없어도 믿는 믿음으로 성숙해 가는 단계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우리의 이해와 인식의 한계를 초월해서 믿음으로 순종했다. 순종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적 믿음이다. 그것을 행할 때 믿음은 능력이 된다.
06 왕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라(pp.126-143)
신앙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이나 믿음의 분량도 각기 다르지만 각자 넘치는 은혜를 경험한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 각자의 믿음의 수준대로 눈높이를 맞춰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눈높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옹알이 수준에서 십자가지고 예수님 따라가는 성숙한 제자로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알지 못할 때에 주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그 사랑을 알게 하셨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수가성으로 찾아가셨다. 38년된 병자를 직접 찾아가 고쳐주셨다. 베드로를 부르시기 위해 갈릴리 호수로 가셨고,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수많은 병든 자들, 어둠에 헤매는 인생 끝자락에 주님은 찾아가셨다. 절망의 자리, 낙심의 자리, 가장 비천한 자리까지 찾아가셔서 그 사랑을 드러내셨다.
진정한 사랑은 찾아가는 사랑이다. 주님과 함께 한 영혼을 찾기 위해 함께 가자. 찾아가서 그들의 아픈 가슴을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그들의 빈 가슴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우자.
우리 인생의 왕되신 주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그의 통치를 선포하고, 왕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07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pp.147-173)
진정한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든든하고 좋은 믿음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과 아름다운 신뢰관계가 이루어진 사람은 얼마든지 순종하게 된다. 유익이 있든 없든 순종하는 이유는 사랑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영적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믿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단순히 육적인 삶만으로는 만족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깊고 깊은 영적 세계의 그 신령한 빛을 사모하게 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고자 한다면 예수님과 사이클을 맞추어야 한다. 베드로가 단단한 반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힘과 노력으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다. 시몬을 게바, 반석으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역사였다. 이와 같이 주님은 지금도 나를 부르시고, 나를 일꾼되게 하시고, 나를 만들어 쓰신다. 주님이 하신다.
08 사람 낚는 사랑의 어부가 되라(pp.174-193)
초라한 갈릴리 어부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채 인생의 갈증을 느끼며 텅 빈 것처럼 무의미하고 기쁨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은 텅 빈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주신다. 주님의 사랑으로 내 삶의 공허함을 메워야 행복한 인생이 된다. 주님의 사랑이 베드로를 변화시켰던 것처럼, 나를 변화시킨다.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살려라. 지금, 영혼의 고기잡이가 되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세상적인 가치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 양육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소중하고 위대하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성공을 성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생의 진짜 성공은 어떤 어려움과 난관을 통해서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 그 사랑 안에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고 축복이다. 하나님 손에 붙들린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나님은 당신을 반드시 최고로 아름다운 인생 작품이 되게 하신다.
09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pp.194-218)
베드로가 예수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는 그의 인생 판도를 바꾸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주님을 사랑하면 믿게 되고, 믿으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과의 사랑이 무르익어 성숙할 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영혼까지 사랑하게 된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에 주님은 그 양들을 치라고 맡기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다. 주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그 은혜에 감격해서 늘 주님께서 위임해주신 거룩한 사명을 떠올리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 천국을 소유하는 믿음의 순수성을 가진 제자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을 붙들게 된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감당하고자 주님을 위한 선한 청지기의 삶을 자청하게 된다. 청지기의 삶은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다. 감사함과 고마움으로 행하게 되는 사랑의 표현이다.